3달 간의 SQL스터디를 마무리하며... (부제: 모더레이터로써의 스터디 후기)
회사 동료들과 2024년 9월 24일 첫 회차를 시작으로, 2024년 11월 12일 마지막 회차까지 마무리하며 약 3달 간의 스터디가 끝났다.
워낙 몰랐던 지식을 습득하고 배우는 것을 좋아해서 스터디는 이것저것 다양하게 해왔었는데, 모더레이터(Moderator)로써 내가 스터디를 진행하고 이끌어나가는 경험은 처음이었던지라 많이 떨리면서도 책임감도 크게 느껴지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 새로움이 잊혀지기 전에 글로써 남겨보고자 한다.
0. 처음 시작은 서동요였다.
"유진님. 회사에서 SQL스터디 하신다면서요!"
"아 진짜요? SQL도 따로 스터디하시는구나. 누가 하신대요?"
"어, 유진님이 가르쳐주신다는데요?"
"? ...제가요?"
친한 디렉터 동료와 우연히 엘레베이터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눴는데 들은 말이었다. SQL스터디를 해요? 제가요? 그 행동의 주체가 제가 맞나요? 상황파악이 안 되고 의아해서 몇 번이고 되물었다. 당사자인 내가 모르는 스터디라니! 심지어 내가 가르쳐주는 역할이라고? 내가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을 짓자 동료께서는 멋쩍게 웃으시며 소문을 들었다고 말씀하셨다.
며칠 후에 회의에서 만난 다른 동료한테 "OO님께서 유진님이 SQL 알려주실거라고, 계획 중이시라고 하시던데 아니었어요?"라는 말을 또 들었다. 이 소문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어쩌다 이렇게 퍼졌는지도 모르겠는데 아무튼 나는 몇몇 동료들한테 [SQL 스터디를 계획하고 있는 유진님]이 되어있었다.
"유진님이 가르쳐주시면 저도 그 스터디 참여하려고 했는데 아쉽네요."
"SQL 배우면 너무 좋을 것 같아서 기대했는데... 업무할 때 완전 도움될 것 같았거든요."
우리 회사는 중요하다 생각하는 데이터들은 거의 다 쌓아놓아서, 사실 데이터가 없어서 못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가 그렇듯이, 쿼리문을 작성할 수 없으면 데이터팀에게 요청해야만 데이터를 받아볼 수 있는 구조이기도 했다. 동료들은 '데이터팀이 바쁜 걸 아는데 요청을 드리는 게 죄송스러워서 망설이게 된다'고 했다. 전혀 죄송스러울 필요 없다고 말씀드렸지만, 나 또한 다른 부서의 리소스를 쓰게 될 일이 생기면 몹시 미안한 마음이 들기 때문에, 그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어... 그러면 한 번 스터디 해볼까요?"
1. "하지만 도와드리고 싶어요."
회사에서는 AWS Athena를 활용 중이기 때문에 데이터베이스를 조회하려면 AWS 계정이 필요했다. 그래서 스터디원들도 계정을 발급받아야 했는데, 내가 회사의 관련 정책을 정확히 모르는 데에 문제가 발생했다. 괜히 내가 아는 범위 한해서 스터디원들한테 안내했다가 나중에 문제 생기면 큰 일이지 않는가. 그래서 리더한테 스터디를 진행하고자 하는데 계정 권한 문제가 있는지, 특히나 비용 관련 우려점이 있는지 여쭤보았다.
어라...?🤔
우리 회사는 구성원들이 자기계발하면서 성장하는 것을 권장하는 분위기로, 사내 스터디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주는 문화이기 때문에 비용 이슈가 없는데도 반대하실 줄은 예상 못했었다. 심지어 나의 컨디션을 이유로...! 무척이나 감동이지만, 이미 동료들한테 스터디 진행하겠다고 말해놨는데 "제가 피곤할 수도 있어서 안 될 것 같아요"라며 발뺄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내뱉은 말은 어떻게든 지켜야하는 폼생폼사 기질이 있다;
"안 피곤하게 할게요. 저도 엄청 전문적인 내용까지 다룰 생각은 없어요."
"유진님이 준비해서 매주 1시간씩 강의를 해준다? 그거 생각보다 힘들어요. 제가 경험해봤어요."
"...하지만 도와드리고 싶어요. 데이터를 보고싶다고 하셨어요. 데이터를 보고 데이터 기반으로 일하게끔 도와주는 게 제 일이잖아요."
"아 -, 유진님 마음이 약해졌군요. 그래요 해요. 하지만 힘들면 그땐 바로 스탑해야해요."
마음이 약해졌다기보단 폼생폼사라서 그런거였지만... 아무튼 비용 등의 우려사항 없는 것 확인했고 리더의 승인까지 받았기에, 스터디원들한테 AWS 계정을 생성하는 방법을 안내드리며 스터디를 시작하게 되었다.
2. 모더레이터로써 세웠던 원칙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이번 스터디는 내가 모더레이터로써, 가르쳐주는 역할로 참여했다는 게 이제까지 해왔던 스터디들과 다른 점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스터디를 진행해나가냐에 따라 스터디원들이 얻는 메리트가 커질 수도 있고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디메리트가 커질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스터디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나는 미리 원칙을 세워놓아야겠다고 느꼈다.
- 스터디를 어떻게 진행해나갈 것인가?
- 나는 동료들이 스터디를 통해서 무엇을 얻기를 원하는가?
위의 질문에 나 스스로 내린 답변은 다음과 같다.
< 스터디는 이렇게 진행한다. >
- 비유를 들어 최대한 쉽고 단순하게 설명한다.
- 복잡한 수식이나 어려운 함수는 다루지 않는다.
- 스터디 회차마다 간단한 예시 쿼리를 짜는 등 실습을 무조건적으로 포함한다. 이론과 실습의 비중은 4:6으로 한다.
- 동료들이 업무에 실제로 많이 접하는 데이터가 존재하는 데이터베이스와 테이블을 스터디 자료로 활용한다.
- 스터디가 끝나고나선 짧게라도 회고타임을 가진다.
< 동료들은 스터디를 통해 이것을 얻는다. >
- 간단한 쿼리문을 직접 작성하는 법
- 기존에 존재하는 쿼리문에서의 조건을 원하는대로 수정하는 법
- 우리 회사 데이터의 수집방식
스터디 자료를 만들 때도 내가 세운 원칙의 방향성에 틀어지지 않도록 했고(원칙과 어긋나는 내용은 과감히 삭제했다), 스터디를 시작할 때마다 '기대효과'라는 제목으로 위의 내용들을 스터디원들과 함께 짚었다. 또한, 스터디가 끝나고나선 5분 정도 함께 느낀 점을 작성해보는 회고타임을 가졌다. 다음 스터디 자료를 구상할 때는 회고타임에서 동료들이 작성한 내용을 바탕으로 보완하기도 했다.
3. 스터디를 진행하며 배운 점
스터디가 끝나고 지난 3달을 돌아봤을 때, '가르쳐주는' 역할로 스터디를 참여했지만 내가 '배운' 것이 훨씬 많았다. 배운 점들 중 가장 좋았던 점은 동료들이 업무를 수행할 때 어떤 데이터를 보고싶어하는지 알게 된 것이다. 데이터 분석가의 역할은 단순히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데이터 속 의미를 전달까지도 해내야한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해당 부서에서 어떤 것을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 스터디를 진행하면서 "OO 데이터는 그럼 어느 데이터베이스의 테이블에서 볼 수 있어요?", "OO한 걸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등의 질문을 많이 들을 수 있었는데, 그 질문들은 나에게 '타 부서가 겪는 문제와 니즈를 알려주는' 주요 단서가 되었다. 새로운 지표를 설계할 일이 생겼을 때 몹시 유익한 정보값이었다. 이외에도 많은 배움들이 있었다.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것이다.
데이터 분석가로써 3년차이기 때문에 SQL에 제법 자신이 있었다. 회사의 특정 데이터가 어느 DB의 어느 테이블에 있는지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터디 자료를 만들면서, 그리고 스터디를 진행하며 동료들의 질문을 들으면서 내가 애매하게 알고 있는 내용들이 꽤 많다는 걸 알았다. 내가 명확하게 알고 있으면 설명 또한 깔끔명료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면 어디서 주워들은 잡지식으로 답변을 커버치기 때문에 스스로도 동료도 제대로 이해시킬 수 없다. 이번 스터디를 통해 '나의 애매하게 아는 지식들'이 무엇인지를 깨달았고 동료들과 함께 채워나갈 수 있었다.
동료의 열정은 나에게 동기가 된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스터디에 생각보다 시간을 더 많이 쓰긴 했다. 스터디 자료를 만드는 데에 3시간이 넘어가는 날도, 스터디 시간을 1시간만 잡아두었는데 1시간 반을 진행한 날도 종종 있었다. 시간을 적게 쓰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는데, 동료들이 워낙 열정적으로 참여해주니까 나도 그 열정에 동화되어 책임감이 커지면서 신경을 더 썼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그래서, 이 시간이 힘들지 않았다. 스터디를 준비하는 동안에는 '이걸 알려주면 동료들 업무에 도움이 될거야'라는 생각에 즐거웠고, 스터디를 진행하는 동안에는 동료들의 "와 이거 너무 유용해요. 업무에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라는 말에 즐거웠다. 동료의 열정이 나에게 동기가 되어, 나를 더욱 몰입하게 했다.
함께 공부해나가며 세워주는 자존감
스터디 기간동안에 회사에서 주어진 업무에 어려움을 겪던 시기가 있었다. 맡은 이슈를 수행해야 하는데, 뾰족한 답을 찾지 못하고 계속 삽질만 하는 날들이 이어졌었다. 아예 쌩신입도 아닌데 일을 잘 수행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좌절하기도 하고 머리를 쥐어뜯기도 하면서 자존감이 조금씩 낮아졌었는데, 그때마다 스터디 슬랙채널의 메세지가 큰 위로가 되었다.
[ 유진님 덕분에 오늘 쿼리 제공받아서 csv파일 다운로드하기 성공했어요. 심지어 조건도 추가했다고요..! 유진님 최고에요 ]
[ 이거 보세여 유진님이 짜주신 쿼리로 이렇게 멋진 시트를 만들어보았어요 ]
[ 유진님의 은혜로... 쿼리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
동료를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에 시작한 스터디였는데, 내가 더 큰 도움과 격려를 받았다. 왜 '최복동'이라는 말이 생겨났는지 다시금 느끼게 되는 스터디였다.
4. 번외 스토리
최근에 회사에서는 Databricks라는 신규 데이터플랫폼을 도입했는데, "유진님 새로운 툴 써보는 거 좋아하죠?"라는 리더의 말과 함께 데이터브릭스가 전사에서 잘 활용되도록 돕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어차피 전사에서 활용될 거라면, 스터디원들도 잘 쓰면 좋겠다싶어 마지막 수업은 데이터브릭스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실습으로 구성했었다. 즉, 7번의 쿼리문 작성하는 방법에 대한 수업과 1번의 데이터브릭스 사용법에 대한 수업을 진행하며 스터디를 마무리한 것이다.
큰 뿌뜻함과 약간의 아쉬움과 함께 스터디를 잘 마무리했었는데... 난 분명 그랬었는데... 슬랙이 왔다.
유진님, 혹시 사업개발팀 신규 입사자분들 대상으로 1시간 정도 강연 해주실 수 있나요...? 데이터브릭스 사용법, 데이터베이스 & 테이블 구성, SQL의 기본적인 개념 (Select from where)만 설명해주시면...
제가요? 신규 입사자분들 대상 강연이요?
다들 SQL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셔서 개념 설명만 해주셔도 너무너무 도움될 것 같아서요...! (유진님 인트로 없이) 냅다 인강 들으면 이걸 우리 데이터에서 어떻게 써먹을지가 잘 안와닿거든요😂
...아무래도 나의 모더레이터의 역할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다.